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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Once) : 음악이 이어준 두 영혼의 짧고도 깊은 순간

by 만봉결파파 2025. 10. 28.

원스 영화 포스터

 

1. 우연에서 운명으로 – 두 인물의 만남이 품은 의미

 

존 카니 감독의 영화 <원스(Once)>는 겉으로는 단순한 음악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관계와 감정의 미묘한 결을 세심하게 포착한 서정적인 드라마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두 인물, 거리의 뮤지션 ‘그’(글렌 한사드)와 체코 이민자 ‘그녀’(마르케타 이르글로바)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만남은 로맨스의 전형적인 도입부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의 순간들을 통해 두 사람의 교감을 쌓아 올립니다.

그는 더블린의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유지하고, 그녀는 꽃을 팔며 가끔 피아노를 치는 평범한 청춘입니다. 그러나 이 둘이 함께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순간, 영화는 일상적인 삶의 틀을 넘어 인간이 음악을 통해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기적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원스>는 바로 그 찰나의 감정, 즉 "사랑이라 부를 수도, 우정이라 규정할 수도 없는" 미묘한 감정의 교차점을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관계가 결코 명시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떨림과 여운에 집중합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만약”으로 끝나는 관계이지만, 그 ‘만약’이야말로 현실의 인간관계가 가지는 불완전함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사랑이 완성되지 않아도,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2. 음악이 말하는 진심 – 감정의 언어로서의 노래

 

<원스>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이며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두 인물이 처음으로 함께 부르는 곡인 「Falling Slowly」는 영화의 핵심 정서를 압축한 노래로, 서로 다른 상처와 외로움을 가진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이라는 구절로 대표되듯, 방향을 잃은 인생이 다시 길을 찾는 순간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영화 속 모든 음악은 감정의 흐름을 설명하기보다 그것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스튜디오에서 밴드 멤버들과 함께 녹음을 하는 장면은,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는 행위의 은유로 읽힙니다. 또한 ‘그녀’가 혼자 피아노를 치며 「If You Want Me」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억눌린 감정과 말로 표현되지 못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처럼 <원스>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음악을 감정의 대체 언어로 사용함으로써, 관객이 직접 그 여백을 채우도록 유도합니다. 관객은 두 사람이 노래를 주고받을 때마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농도를 눈빛과 음색을 통해 체감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말보다 음악이 더 진실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자리합니다.

또한 <원스>의 음악들은 모두 배우들이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곡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진정성을 지닙니다. 이는 헐리우드식의 세련된 사운드트랙과는 다른 생생한 현실감을 만들어내며, 거리의 뮤지션이 실제로 부를 법한 곡이라는 사실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강화합니다. 결국 음악은 이 영화의 ‘이야기’이자 ‘감정’이며, 동시에 ‘현실’입니다.

 

3. 사랑의 여운 –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아름다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갑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피아노를 선물하고,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돌아갑니다. 그들의 관계는 마침표를 찍지 않은 채, 오히려 여운 속에 남습니다. 많은 로맨스 영화들이 해피엔딩 혹은 비극으로 결말을 맺지만, <원스>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멈춰 섭니다. 바로 그 ‘멈춤’이야말로 현실적인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남겼고, 그 영향은 영원히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듭니다. 이 영화는 사랑이 반드시 함께 머무는 형태로 완성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웁니다. 어떤 관계는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그 순간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큼 강렬한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녀’가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미소 짓는 장면은, 그 짧은 만남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잔향으로 남았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영화는 도시의 풍경과 일상의 순간들을 담담히 포착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도 예술이 깃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음악은 그저 흘러가는 멜로디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끈입니다. <원스>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 끈이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 소박함 속에서 진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원스>는 사랑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연결에 대한 조용한 찬가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그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았더라도 진심이 오갔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울림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