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콜럼버스 Columbus〉 – 공간 속에서 관계를 세운다는 것
고고한 유리 건물과 미드센추리 모던 양식의 도시,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한 코고나다(Kogonada) 감독의 〈콜럼버스〉는 건축을 ‘삶의 은유’로 삼은 섬세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엔 한 청년과 한 여성이 나누는 조용한 대화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공간이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매개하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가 깔려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케이시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도시 곳곳의 건축물에 매료된 인물입니다. 그녀에게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정신적 지주와 같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온 진은 세계적 건축 이론가인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그 아버지와의 관계는 멀어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건축이라는 공통된 언어를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건축물을 단순히 ‘배경’으로 두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인물처럼 다룬다는 점입니다. 카메라는 인물보다 공간을 더 오래 응시합니다. 직선과 곡선의 대비, 유리와 철의 반사,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모두 인물의 내면을 반영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특히 케이시가 설명하는 ‘이로 서리안의 어빙턴 파크 메서디스트 교회’ 장면은 이 영화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건축물이 단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의 ‘공간적 여유’가 사람을 위로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건축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를 함축합니다.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시키는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말보다 ‘정적(靜寂)’으로 말하는 영화입니다. 인물들은 건축물 앞에 서서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서로의 상처와 욕망이 드러납니다. 코고나다 감독은 건축을 통해 “사람이 머무는 이유, 그리고 떠나야 하는 이유”를 동시에 묻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시적인 탐구이며, 건축을 감각의 언어로 번역해낸 아름다운 시각적 명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더 폴 The Fall〉 – 상상력으로 다시 지은 세계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은 건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화는 아니지만, ‘공간과 구조의 상상력’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시각화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초기의 스턴트맨 ‘로이’가 병원에서 다친 소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폴〉의 건축적 미학은 바로 이 ‘공간의 설계’에서 비롯됩니다. 영화 속 상상 세계는 실제 세계의 고대 유적, 사원, 궁전, 사막의 기하학적 풍경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인도의 암베르 요새, 이집트의 신전, 발리의 계단식 논밭, 터키의 돌집 마을 등은 모두 실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완전히 다른 신화적 건축물로 재탄생합니다.
이 영화에서 건축은 인간의 기억과 상처를 담는 ‘상상력의 그릇’으로 기능합니다. 로이는 자신이 잃은 사랑과 절망을 이야기 속 공간들로 구축하며, 소녀는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이해합니다. 건축은 곧 ‘이야기의 구조’이며, 공간의 변주는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상징합니다.
〈더 폴〉의 영상은 건축과 미술, 그리고 인간 감정의 융합체입니다. 거대한 계단 위로 펼쳐지는 군대의 행렬,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궁전의 복도, 절벽 위의 신전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건축의 환상’입니다. 타셈 싱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보다 실제 공간을 선호했는데, 이는 건축이 지닌 물리적 감각을 영화 속에서 온전히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건축을 시각적 상징으로 사용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험합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그 세계에서, 건축은 이야기의 틀을 세우는 기둥이며, 감정이 흘러가는 통로가 됩니다. 〈더 폴〉은 건축을 ‘상상력의 구조물’로 재정의하며, 공간이 얼마나 인간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적 영화입니다.
3. 〈마이 아키텍트 My Architect〉 – 건축과 인간의 유산
나다니엘 칸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이 아키텍트〉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삶과 작품을 아들의 시선으로 조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위대한 건축가의 업적을 소개하는 전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창조의 본질을 탐구하는 감동적인 회고록에 가깝습니다.
루이스 칸은 20세기 근대 건축의 거장이지만, 그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깊은 균열을 남겼고, 세 명의 여성과 각각의 자녀를 두고 복잡한 사생활을 살았습니다. 영화는 그중 한 아들 나다니엘 칸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건축물과 삶을 동시에 탐구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마이 아키텍트〉의 가장 큰 힘은 ‘건축과 인간 사이의 유비(類比)’에 있습니다. 루이스 칸의 건축물은 언제나 거대하고 장엄하지만, 동시에 미묘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방글라데시 의사당은 압도적인 대칭미 속에 인간적인 불균형을 담고 있으며, 미국의 킴벨 미술관은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통해 완전함보다는 ‘존재의 숨결’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건축은 마치 그의 인생을 반영하듯, 완성보다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영화 속에서 나다니엘 은 세계 곳곳의 아버지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그 의미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깨닫게 됩니다. “건축은 결국 인간이 남기는 사랑의 형태”라는 것을.
〈마이 아키텍트〉는 건축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그것은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진 구조물의 미학을 넘어,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고,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언어입니다. 루이스 칸의 건축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의 불완전함이야말로 그 작품에 인간적인 깊이를 부여했습니다.
감독은 건축의 물질적 형태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건축물은 시간이 흐르며 낡고, 빛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치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변하듯이요.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건축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세워졌지만, 인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 감정, 기억이 쌓여 만들어지는 ‘시간의 조각품’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세 편의 영화—〈콜럼버스〉, 〈더 폴〉, 〈마이 아키텍트〉—는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축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콜럼버스〉는 건축을 통해 ‘관계와 치유’를,
〈더 폴〉은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공간의 미학’을,
〈마이 아키텍트〉는 건축을 ‘인간의 유산이자 사랑의 증거’로 바라봅니다.
이 세 영화는 각기 다른 결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건축을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합니다. 건축은 인간이 머무는 집이자, 사유의 공간이며, 기억의 그릇입니다.
스크린 속 건축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공간에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공간은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건축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조차 하나의 예술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